관제센터에서 나온 해에 김밥집을 열었다.
컴퓨터 앞을 떠나는 쪽으로 방향을 크게 튼 결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왔다.
가게를 여는 것과 가게를 닫지 않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손님이 언제까지 줄고 언제 돌아오는지 아무도 몰랐다.
예측이 서지 않는 구간에서는 최악을 먼저 잡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재고 거기에 맞춰 결정을 좁혔다.
장사 수완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였다.
가게에는 판매 기록이 매일 쌓였다.
무엇이 언제 나갔는지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남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정산하려고 열었다가 나중에는 그것만 들여다봤다.
다음 주에 무엇이 얼마나 나갈지를 예측하고 준비량을 거기 맞췄다.
시간대별로 손님이 무엇을 같이 가져가는지도 갈라봤다.
맞는 날이 늘었다.
버리는 재료가 줄고 준비하는 양이 안정됐다.
이건 가게를 조금 더 잘 굴려보려는 취미가 아니었다.
기계학습이 실제로 쓸모가 있는지를 내 돈을 걸고 확인한 자리였다는 뜻이다.
논문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본 것이다.
데이터가 판단을 바꾸는 장면을 매일 봤다.
바꾼 판단의 결과가 그날 저녁에 바로 돌아왔다.
틀리면 다음 날 고칠 수 있었다.
이만큼 피드백이 빠른 학습 환경을 그 뒤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장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제일 오래 붙잡고 있던 건 판매 기록이었다.
가게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접을 이유는 장부 안에 없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은 계속 컴퓨터 쪽에 있었다.
잘 되는 것을 접는 판단은 안 되는 것을 접는 판단보다 어렵다.
숫자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지금 잘 되고 있는가가 아니었다.
이걸 계속하면 내 밑천이 제값을 받는가였다.
아까운 마음은 이 질문의 답이 되지 못했다.
답이 아니라고 나와서 접었다.
접는 판단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뒤로 같은 모양의 결정이 세 번 더 온다.
그때마다 기준은 여기서 세운 것을 그대로 꺼내 썼다.
잘 되는 것을 접어본 적이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계산이 빨라진다.
결단이라기보다 절차에 가까워진 건 이 한 번 때문이다.
2025년 초에 가게를 정리했다.
남은 것은 조리법이 아니라 데이터를 보는 순서였다.
그 순서를 들고 갈 자리를 다시 찾아야 했다.
다음 장은 그 자리를 찾다가 잘하던 트랙마저 한 번 더 접는 이야기다.